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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낙선을 극복한 에이브라함 링컨의 놀라운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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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한 명인 에이브라함 링컨! 이번 글에서는 에이브라함 링컨의 리더십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 (Abraham Lincoln, 1809~1865) 에이브라함 링컨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으로, 노예 해방의 아버지로 불리며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또한 신장이 193cm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키가 컸습니다. 이러한 큰 체격 덕분에 프로레슬러로도 활동했으며 승률도 상당히 높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에이브라함 링컨은 우편국장, 뱃사공, 측량기사, 가게 점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사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또 다른 사업에서도 실패하면서 결국 상당한 채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에이브 라 함 링컨 1832년에는 일리노이 주 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낙선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정치 생활은 험난했습니다. 일리노이 주 의원 의장 선거에서 낙선했고, 1840년 대통령 선거인단 추천에서도 탈락했으며, 연방하원 의원 공천에서도 떨어졌습니다. 37세에 겨우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2년간 재임했을 뿐입니다. 이후 다시 연방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떨어졌으며,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계속 낙선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변호사가 된 후인 1834년, 일리노이 주 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드디어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링컨은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으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의 사업 실패와 7번의 선거 낙선, 그리고 어머니와 누이, 약혼녀와 두 아들을 잃는 개인적인 슬픔까지 겪으면서도 결국 극복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에이브라함 링컨을 희망의 리더로 얘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명연설과 유머 그리고 솔선수범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 전투의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열린 국립묘지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