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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상황에서 상반된 차이점이 선사하는 결정적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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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생각과 행동이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정반대의 차이가 주는 웃음과 화두에 대한 의미 있는 유머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현모양처와 악처의 차이 현모양처는 천사같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악처는 자기가 천사라고 믿습니다. 현모양처는 남편이 예쁘다고 하면 기뻐하지만, 악처는 남편이 예쁘다고 하면 언제는 미웠었냐고 다그칩니다. 현모양처는 남편에게 새로 양복을 사주면 기뻐하지만, 악처는 남편이 새로 양복을 사면 애인이 생겼냐고 의심합니다. 현모양처는 셔츠를 다릴 때 그것을 입을 멋진 남편을 떠올리지만, 악처는 남편이 셔츠를 입을 때마다 '다려놓기가 무섭게 쏙쏙 빼 입는다'라고 하면서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현모양처는 조그마한 일이라도 남편이 원하는 것이면 기억했다가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악처는 남편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안 된다고 반대합니다. 아가씨와 아줌마의 차이 아가씨 대부분은 결혼을 꿈꾸지만, 아줌마 대부분은 이혼을 꿈꿉니다. 아가씨는 필요한 부분에 살이 쪘지만, 아줌마는 필요 없는 부분에 살이 쪘습니다. 아가씨는 몸을 잘 보이기 위해 옷을 입지만, 아줌마는 몸을 잘 가리기 위해 옷을 입습니다. 아가씨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대체로 서 있지만, 아줌마는 어떻게든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아가씨는 뱃속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지만, 아줌마는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습니다. 아가씨는 힘들면 소심해지지만, 아줌마는 힘들수록 강해집니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 승자는 행동이 앞서고 패자는 말이 앞섭니다. 승자는 벌을 받을 각오로 결단하다가 이기고, 패자는 이기기 위해 꾀를 부리다가 벌을 받습니다. 승자는 어린이에게도 사과할 수 있고, 패자는 노인에게도 고개를 못 숙입니다. 승자는 넘어지면 일어나 앞을 보고, 패자는 일어나 뒤를 바라봅니다. 승자는 실수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라고 생각하고, 패자는 '너 때문이야'라고 생각합니다. 승자는 바람이 불면 배...

소주 상식 10선: 화학주? 유통기한? 해장술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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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애환과 함께 해온 술, 소주! 하지만 소주에 대한 잘못된 상식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소주를 바로 알고 마시기 위한 재미있는 상식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주는 화학주다? 화학주는 화학 반응을 통해 만들어진 술이라는 의미로, 촉매를 사용하거나 필요한 조건을 맞추어 화학 반응이 일어나도록 하여 전혀 성질이 다른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포도 같은 과실류나 곡물을 이용하여 술을 담그고 발효시켜서 술을 얻는 것은 일종의 화학 반응이라고 볼 수 있으나, 소주 자체는 알코올에 물을 섞어 그 농도를 낮춘 희석주입니다. 물론 소량의 감미료와 같은 첨가제가 추가로 들어갑니다. 따라서 소주는 화학주라기보다는 희석주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타당합니다. 소주도 유통기한이 있다? 막걸리나 약주, 맥주, 청주, 와인과 같은 발효주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술이 변질되기 때문에 유통기한을 정하고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가 낮고 유기물이 술에 포함되어 있어 부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상대적으로 높고, 순수 알코올을 희석하여 첨가물만 추가했기 때문에 변질될 물질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부패하거나 변질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주는 유통기한이 없는 것이 맞습니다. 소주로 회식하는 모습 병마개를 딴 후 맨 위 부분의 소주는 버려야 하나요? 과거에는 병마개 안쪽에 코르크를 사용하였는데, 미세한 가루가 소주 윗부분에 떠있는 경우가 있었고 소주 만드는 기술도 지금보다 낙후하여 공정 중에 들어간 불순물들이 역시 윗부분에 떠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약간 버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코르크를 사용하지도 않고 소주의 생산기술도 발전하여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소주를 따기 전 밑동을 쳐주면 술맛이 부드러워지나요?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미세한 코르크 가루나 불순물들이 소주의 맨 위에 모이도록 하던 과거의 방법이 잘못 와전된 것이며, 술맛이 부드러워지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고춧가루를 탄 소주가 감기에 효과가...

맥아더, 이순신, 최영 장군의 리더십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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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장군들은 수많은 부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므로 탁월한 리더십은 필수적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장군 세 명의 리더십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집중' 리더십 "나는 항상 병력 집중화를 바탕으로 지휘했다." 맥아더 장군이 얼마나 집중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말입니다. 그는 병력 집중이 어려운 환경에서는 전투를 시작하지 않는 대신 포위 작전 등을 활용하며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 이후 만반의 준비가 아군에 갖춰지면 적군의 허를 찔러 전세를 장악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맥아더의 부대가 상대적으로 열세인 병력과 자원을 가지고도 주어진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항상 '집중을 통한 전세 장악'이라는 집중의 원칙에 충실했다는 사실입니다. 맥아더 장군 한국전쟁을 민주 진영 남한의 승리로 만들었던 결정적 작전인 인천 상륙작전은, 이러한 '집중의 원칙'이 잘 반영된 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집중하여 운용하는 전략은 비단 전쟁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는 물론이고 가정과 개인에게도 먼저 유리한 여건을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전략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신중' 리더십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 대한 경험 부족과 군사 자원이 절대적으로 열세인 상황 하에서 항상 신중함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전투에 임하였습니다. 그는 완벽한 전투 태세 확립으로 전열을 제대로 갖출 때까지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었으며, 그에 따라 실제 전투에서의 실수들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 이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을 앞두고 각 병사들에게 강조했던 말입니다. 이순신 장군 이러한 이순신 장군의 신중함은 열세였던 환경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였고, 왜군과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

악보를 보지 못했던 비틀스의 놀라운 비밀과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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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영국의 전설적인 그룹,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하고 또 그들의 음악을 좋아했던 비틀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비틀스, 그들은 누구인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틀스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모든 라디오에서 비틀스 음악이 흘러나왔으며, 미국 음악 잡지인 빌보드 차트 1위에 랭크되었던 곡이 무려 21곡으로 이 부분에서도 대기록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입니다. 객관적인 수치로도 지금까지 수십억 장의 음반이 판매되었고, 대중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비틀스 이들의 히트곡 'Yesterday'는 리메이크한 가수가 무려 수천 명이 넘는다고 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팝 애창곡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노래는 대부분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함께 만들었는데, 한 사람이 멜로디를 떠올리고 흥얼거리면 다른 사람이 고치고 보완하였으며, 바로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고 기타 코드를 기록하여 멜로디를 기억했다고 합니다. 악보를 보지 못했던 그들 비틀스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충격적이기도 한데, 멤버 4명 모두가 악보를 전혀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크게 놀라는 사람들에게 폴 매카트니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며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녹음할 때나 다른 뮤지션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는 멤버들이 노래를 부르고, 그걸 제작자인 조지 마틴이 악보로 옮겨 적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해결했다고 합니다. 기타리스트인 조지 해리슨은 심지어 본인들이 악보를 볼 수 없었던 게 오히려 비틀스 음악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적인 뮤지션의 작곡 방법으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고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비틀스는 이렇게 해서 모든 곡을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악보를 볼 수 없었던 것이 오히려 혁신적인 작곡에 큰 도움이...

코털 관리와 소금물 비강 세정으로 호흡기 건강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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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절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의 호흡기를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간단하지만 효과 만점인 방법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호흡기 건강 관리 상식 우리의 몸이 정말 훌륭한 것은 환경 변화에 아주 잘 적응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의 코털입니다. 평상시에 코털이 밖으로 삐져나오면 보기에도 안 좋고 비위생적으로 보이므로 주기적으로 적당하게 잘라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평소보다 코털이 빠르게 자라고 굵기가 두꺼워진다면 주변 환경을 점검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나타나는 변화들을 잘 감지한다면 건강에 좋지 않은 주변 요인들을 찾아서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코 코털은 우리 호흡기 중 최전선에서 흡입하는 공기를 걸러내고 보호하는 기관입니다. 보기 싫다고 코털을 너무 짧게 깎거나 뽑아내는 것은 코 자체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몸 안으로 들이마셔지는 공기 속의 먼지나 불순물을 걸러주는 필터 역할을 하며, 미세하게 습도 조절까지 해줍니다. 물론 호흡기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미세먼지는 코털로만 걸러내기 어렵기 때문에, 적절한 마스크나 공기청정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신비로운 우리 몸은 주변 공기의 오염 정도가 심하다고 느끼면 코털의 성장을 촉진하여 길이와 굵기를 증가시켜, 조금이라도 오염물질을 걸러낼 수 있도록 대응합니다. 따라서 본인의 코털이 상대적으로 빨리 자라고 굵어진다면, 생활하는 공간의 공기 오염 수준이 높다는 의미이므로 건강 검진을 받아 기본 건강을 점검하고, 미세먼지 마스크나 공기청정기를 활용하여 공기 질을 높이는 것이 좋습니다. 코속의 구조 이와 함께 콧속을 자주 세정해주면 호흡기 질환을 상당한 수준으로 예방할 수 있습니다. 코털이나 코의 점막에 달라붙어 있던 바이러스나 세균이 호흡에 의해 다시 기관지나 폐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비강까지 청소하는 것으로, 콧속에 ...

크라이슬러 회생의 영웅, 리 아이아코카의 기적 같은 경영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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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직전의 자동차 회사였던 크라이슬러를 극적으로 회생시켰던 리 아이아코카의 파란만장했던 자동차 인생은 유명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리 아이아코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리 아이아코카의 포드 시절 리 아이아코카(Lee lacocca, 1924~2019)는 포드 자동차의 수습 엔지니어로 출발하여 부회장까지 올랐던 입지전적 인물이며, 파산 직전의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를 기사회생시켜 경영의 귀재로도 불렸습니다. 1946년 포드에서 기술자로 근무하다가 판매/홍보 부서로 옮기면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56년도에 출시한 포드 차량을 '56을 위한 56'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20% 할인가에 판매하고, 3년간 매달 56달러씩 할부 구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전국적인 마케팅의 성공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하였습니다. 포드 머스탱 머스탱, 링컨 컨티넨탈 마크 III, 에스코트 등의 포드 명차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1960년대 머큐리 쿠거와 마퀴스를 출시해 머큐리 브랜드를 되살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과 유럽의 소형차에 대응하기 위한 신형 소형차 핀토를 개발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과 덕분에 1960년에는 제너럴 매니저로 승진하였고, 1965년에는 포드 부회장이 되었으며, 1967년에는 승용차/트럭 부문 부회장, 1970년에는 회사 부회장까지 올랐습니다. 가격이 2천 달러 이하에 총중량 약 0.9톤인 소형차 '토'는 초기 실적은 좋았으나, 과도한 원가 절감으로 연료탱크 보호 장치를 빼 버리는 등 안전을 소홀히 하여 결국 1970년 말에는 판매 감소와 거액의 보상금 지불로 이어졌고, 이는 포드 자동차의 이미지를 흐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회장인 헨리 포드 2세와도 갈등이 생기면서 아이아코카는 1978년 포드에서 해고됩니다. 리 아이아코카는 바로 이때 폐업 직전의 크라이슬러 경영 리더가 되어 역사적인 회생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리 아이아코카와 크라이슬러 리 아이아코카 아이아코카는 크라이슬러...

라이트 형제 비행 성공의 비결, 실험과 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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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버리지 않고 오래전부터 실현하려고 노력해 온 인간은 수많은 실패 끝에 결국 성공하고야 맙니다. 이번 글에서는 인류 최초로 유인 동력 비행에 성공한 항공 세계의 개척자 라이트 형제, 그리고 그들이 하늘을 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라이트 형제 하늘을 날다 윌버 라이트 (Wilbur Wrignt, 1867~1912) / 오빌 라이트 (Orville Wright, 1871~1948)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하늘을 나는 유인 비행기를 만들어 시연회를 가졌습니다. 1903년 10월 7일,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던 새뮤얼 랭글리(Samuel Langley, 1834~1906) 박사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개발한 유인 동력 비행기를 선보이는 행사는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가에서 수많은 관람객의 시선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이목을 집중시켰던 인류 최초의 유인 비행 실험은 비행기가 포토맥 강에 추락하면서 결국 실패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후 다른 유인 동력 비행 실험들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같은 해인 1903년 12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키티호크 해변에서 라이트 형제가 유인 동력 비행에 성공합니다. 모터와 프로펠러를 장착한 유인 비행기 '플라이어 호'를 타고 마침내 인류의 꿈인 동력 비행에 성공한 것이 바로 라이트 형제였던 것이었습니다. 당대의 물리학자, 공학자, 과학자들이 수없이 실패했던 유인 비행 실험이었지만, 오하이오 주 데이턴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던 라이트 형제는 달랐습니다. 라이트 형제의 플라이어 1호 잘 알려지지는 않은 사실이지만, 라이트 형제는 정확하게는 라이트 오 남매였습니다. 지역 신문사를 운영하다 문을 닫고 자전거 가게를 열었는데, 장난감 가게도 함께 운영하면서 작은 글라이더를 통해 비행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결국 윌버와 오빌 형제만 비행기 제작에 몰두하고, 로런스, 필립, 토머스, 캐서린 등 나머지 세 남매는 경제생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