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의 짧고 굵은 리더십, 현대 조직에 주는 시사점

조선시대 유생들과 많은 지식인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위인 중 한 명인 조광조! 이번 글에서는 짧고 굵게 살다 간 조광조의 리더십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광조의 리더십

조광조는 결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짧고 굵게,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리더십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사람입니다.

조광조는 중종 때 34세의 적지 않은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중종의 눈에 들어 조정의 모든 사안에 대해 가장 영향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로서 존경과 칭송을 받으며 초고속 승진까지 하게 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한 배경에는 당시에 중종이 처한 정치적 환경 탓도 매우 컸습니다. 이복형이었던 연산군을 몰아낸 공신들에 의해 추대된 임금이라 정치적 실권은 모두 공신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없는 왕권은 쿠데타로 얻었다는 정당성 이슈까지 가중되어, 당시 중종은 심한 열등감에 방황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학문이 매우 높고 많은 지지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조광조와의 협업이 절실히 필요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조광조는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가 모두 성리학 안에 있으니 왕이 이 사실을 하루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하며, 나라일은 모두 성리학을 알고 있는 관리들에게 맡기고 왕 자신은 나라의 비전을 제시하고 백성에게 감동을 주고 감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조선 시대 많은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조광조 이미지
조선 시대 많은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조광조

다시 말해서 나라 일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테니, 왕은 나라에 대한 큰 비전을 먼저 제시해 백성을 감동시키고 이를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면 모두가 감화되어 따른다는 리더십을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관리들에게도 이 나라는 임금의 나라가 아니라 바로 내 나라요, 내 후손의 나라라는 신념으로 성심껏 일하면 조선은 반드시 번창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조광조 본인 스스로도 감동과 감화를 주는 리더십을 발휘하였고, 이 때문에 많은 유생과 관리들, 그리고 중종까지 그를 따랐던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들이 조선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으며, 조광조에 대한 지지와 성원은 갈수록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519년에 발생한 기묘사화로 유배를 간 조광조는 사약을 마시고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맙니다. 과거 급제 후 벼슬에 오른 지 4년 만에 이 모든 변화가 종결되었던 것입니다.

정치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인의 만을 따지는 지나친 순수성, 지위가 올라가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오만과 그에 따른 과도한 일 추진, 선왕들에 대한 심한 비판 등이 훈구파에게 빌미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가 짧은 기간에 보여준 강렬한 리더십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지 조광조의 리더십과 식견을 나라의 발전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내쳐버린 중종의 무지와 나약함, 배신의 리더십은 결코 재현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시사점

나라의 주체가 왕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후손이니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면 반드시 발전할 것이라는 것과, 왕은 세부 사항에 연연하지 말고 비전을 제시하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조광조의 생각은 현대 사회의 수많은 조직과 그 조직의 리더들에게도 최적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아무리 뛰어난 인재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인정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육성하고 관리할 수 있는 큰 리더가 없다면 오히려 사건 사고만 늘어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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