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의 생애와 인간적 면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의 숨겨진 두 얼굴

알렉산더는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위대한 정복자 중 한 명으로, 왕 중의 왕이라 불리며 대왕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수많은 전투와 정치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알렉산더 대왕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떠했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렉산더의 생애

알렉산더(Alexander III Magnus, 기원전 356~323)는 고대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이었습니다. 본래 '알렉산드로스'이지만 영어식 발음인 알렉산더로 더 많이 알려졌고, 그의 모험적인 생애와 일화는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로 인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왕족이었던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의 귀족 교육을 통해 읽기, 악기 연주, 말타기, 사냥, 전투 등을 배웠는데, 특히 13~14세 무렵부터 16세까지 그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다양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는 문무를 겸비하고 강한 의지와 군사적 재능을 지닌 뛰어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부왕이었던 필리포스 2세가 암살당하자 20세의 젊은 나이로 왕위를 계승한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제국을 중심으로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정복해 나갔고, 30세 무렵에는 그리스를 시작으로 남쪽으로는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도 북서부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알렉산더 동상 이미지
알렉산더 동상

그는 주요 전투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고, 전례 없는 드넓은 영토를 정복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역사적인 정복은 인도 원정에서 부하들의 피로와 히파시스강을 넘어 더 이상 동쪽으로 진군하기를 거부한 군대의 반발로 결국 중단되었고, 이후 바빌론으로 돌아온 알렉산더는 3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절친이자 참모였던 헤파이스티온의 죽음 이후 과도한 음주, 독살설, 말라리아나 기타 급성 질환 등 지금도 사인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있습니다.

알렉산더의 인간적인 면모

알렉산더의 성격은 전장의 리더답게 매우 급하고 충동적이며 때로는 사나운 면모를 보였고, 야망도 매우 컸습니다. 특히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영향 속에서 자신이 위대한 운명을 타고났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정복자로서의 야망도 키워 나갔습니다.

그 역시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왕권 강화를 위해 잠재적인 위험인물들에 대한 잔혹한 숙청을 단행하였습니다.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후계자였던 사촌 형 아민타스 4세를 처형했고, 왕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다른 왕족들도 제거하였습니다.

고대의 왕권 정치에서는 왕위 계승 과정에서 경쟁자를 제거하는 일이 빈번했지만, 알렉산더 역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잔혹한 정치적 결정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알렉산더의 외모는 다부지고 용맹한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고대 기록만으로 그의 정확한 키나 실제 외모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후대의 동상이나 영화에서 묘사되는 모습과 실제 모습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특유의 리더십과 함께 매우 영리하였는데, 이와 관련해 알렉산더가 어린 시절 보여준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한 상인이 필리포스 2세 부왕에게 고가의 말 한 마리를 바쳤지만, 말은 왕을 포함한 그 누구도 태우지 못하게 고개를 휘젓고 다리를 치켜세우며 난동을 부려 화가 난 필리포스는 말을 당장 치워버리라고 말했습니다.

분위기가 썰렁해진 그때 알렉산더는 그 말이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본인이 그 말을 길들이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양한 교육을 받은 왕자이긴 했지만 어린 알렉산더가 말하는 위험한 요구에 모두 당황하였고, 고민하던 부왕은 결국 허락하였습니다.

결국 알렉산더는 말을 햇빛을 향하게 하여 그림자가 앞에 나타나지 않도록 진정시킨 후 올라타는 데 성공했고, 멋지게 질주까지 하면서 필리포스 국왕은 크게 감탄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말은 훗날 알렉산더의 명마 부케팔로스가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

알렉산더는 철학과 예술, 과학에 대한 관심이 컸고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전쟁터까지 철학자들과 학자들, 예술가들을 동행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인도 원정에서 자신의 정복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던 인도 철학자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그들의 지혜를 존중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알렉산더는 누구보다 빠르게 지식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이성적이고 지적인 측면은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으로서는 물론이고 한 나라를 이끄는 왕으로서 성공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카리스마가 넘쳤던 알렉산더는 절제와 청렴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권력이 커지면서 점차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성향도 나타났습니다. 특히 술에 취한 상태에서 친구 클레이토스를 직접 죽이는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알렉산더의 지적인 면모에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평가됩니다. 단순한 정복과 지배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를 융합하고자 했던 그의 정책과 헬레니즘 문화의 확산에도 이러한 배경이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알렉산더의 세계 정복에 대한 야망과 그것을 뒷받침했던 천재성과 전투력, 비상한 전략은 이미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물리적 정복을 넘어 현지 세력과의 동맹과 문화적 융합을 함께 추진한 점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강대국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대목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전쟁터에서도 학자와 철학자들을 존중하고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이어갔던 그의 모습은 카리스마와 힘만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리더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원전 4세기에 짧은 생을 살았던 알렉산더가 오늘날까지도 대왕으로 불리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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