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 이이, 9번 장원급제와 임진왜란 전 10만 양병설의 진실
이번 글에서는 본인의 천재성을 나라를 위해 고스란히 사용한 율곡 이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이의 천재성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던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가르침과 독학으로 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사시에 장원급제를 합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시험을 봐서 총 9번의 장원을 하게 되는데, 쉽게 설명하면 사시, 외시, 행시 등의 고등 고시 시험을 모두 수석으로 합격한 것이 됩니다. 서인, 동인 간의 당파 싸움이 극에 달했던 당시에는 이 사실이 이이를 비난하는 단골 표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합격한 후에 보지 않아도 되는 시험까지 굳이 응시해서 다른 사람의 기회까지 빼앗는 과도한 집착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것입니다. 율곡 이이의 초상화 또한 우리가 과거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인 임진왜란 발생 전 이이가 주장했다는 10만 양병설 또한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이이가 항상 국방을 중요시하였고, 학문과 천재성을 바탕으로 한 예견력이 뛰어났으므로 당시 국제 정세를 조금만 파악하였다면 충분히 10만 양병성을 주장할 만하였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당시 조선의 경제나 인구 구성으로는 10만 병사를 만들기 자체가 불가능하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당쟁의 결과로 왜곡되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0만이라는 숫자만 부정확할 뿐, 당시의 한반도 상황을 보면 조선의 군사력 강화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20대 청년 이이가 직접 찾아가서 만났던 퇴계 이황도 이이의 천재성과 나라를 위하는 진정한 선비 정신을 가지고 있음을 단번에 파악하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수많은 책 이외에 너무도 검소하게 사는 진정한 선배 선비였던 이황에 대한 이이의 존경과 찬사도 당연히 차고 넘쳤습니다. 이이의 희망 당시의 조선은 뇌물이 아니면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소송의 판결도 뇌물에 의해 결정되며, 하급 관리들은 백성들을 핍박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