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를 살리기 위해 소통을 선택한 공민왕의 개혁
조선 건국 이전의 고려는 태조 왕건부터 공양왕까지 총 34대였습니다. 그중 고려의 마지막 왕은 아니지만 마치 마지막 왕처럼 기억되는 왕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려를 다시 부흥시키고자 했던 공민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민왕의 개혁 공민왕은 1351년 왕위에 올랐을 때 다 무너져가는 고려를 혁신하여 태조 왕건 때처럼 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고려는 소수의 권문세가들이 토지, 사람, 관직 심지어 군사력까지 독점하고 있어 중앙 정부를 우습게 보고 있었으며, 실제로 고려 말기의 왕들은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고려 전체를 바꾸어 나가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었는데 공민왕은 의외의 방법으로 풀어나갔습니다. 공민왕은 소통을 강조하며 매일 관료 대신과 정사를 논하고 중요한 실무를 직접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의 왕들이 간신들에게 둘러싸여 상하 소통이 안 되었기 때문에 고려가 병들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공민왕은 소통의 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별도 기관을 구성하여 원로대신은 물론 선비들이 정사와 경전, 역사에 대해 수시로 발표하고 토론하도록 하였고, 권문세가들이 빼앗은 토지와 각종 비리, 억울한 사연들을 고발하도록 하고 그에 대해 세부 조사하여 잘잘못을 가리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다양한 관료들이 공민왕 본인에게도 정사에 대한 어떠한 직언도 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고려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공민왕이 대전에서 정사를 주최하면 나라의 주요 사안은 물론 백성들의 민심과 해결해야 할 세부 문제들까지 모두 사실대로 보고받을 수 있었으며,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논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민왕 공민왕이 주는 시사점 이러한 소통을 강조하면서 시작되었던 공민왕의 고려 재부흥의 꿈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소통을 통해서도 해결하지 못한 다른 문제들이 더욱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개혁의 방향은 현대사회에도 상당한 의미를...